강직한 정치가 내암 정인홍

 

정인홍은 조선중기 문신이자 성리학자 입니다. 북인계열의 문신으로 호는 내암 자는 덕원 본관은 서산으로 출생지는 경상남도 합천의 남사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정인홍은 조선중기 선조와 광해군대에 북인과 남명 조식학파를 이끌며 정국을 주도 했습니다. 조식의 제자로 강직한 성품을 지녔습니다.

 

 

 

임진왜란당시 의병으로 활동했으며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인홍은 대규모 의병을 일으켰다. 환갑의 나이로 직접 칼을 들고 의병을 지휘했을 정도로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 였다. 강직한 성품이라고 할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융통성이 없다는 표현이 가능하다. 정인홍의 의병활동은 실록을 비롯하여 각종 문집에 기록되어 있다. 정인홍을 따르는 휘하에 정예병 수백명, 창군 수천 여명이나 되는 병력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인홍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엿볼수 있다.

 

 

광해군 시절의 정인홍 핵심인물로 등장하게 된다. 그 이유는 광해군이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 때 광해군을 보호했고 그 결과 광해군 시절에 최고의 권위를 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 아니다는 의견이 있어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인홍이 광해군 시절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광해군은 정인홍에게 자문을 구하였고 정인홍의 견해는 대부분 수용 되었다. 광해군의 왕권 강화를 위해 왕권을 위협하는 인물들을 처단하고자 했다.

 

 

 

대북의 영수 광해군 개혁정치의 실천가인 정인홍은 반대파들에게 강경한 입장이었다. 그래서 서인들과 남인들의 원성은 점점 높아졌다. 같은 대북인 이이첨과 반대파들을 제거해 나갔다. 대북은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하는 폐모살제를 실행했다. 이덕형, 곽재우등이 반대를 했지만 영창대군은 유배되었고 곧 살해당하게 된다. 인목대비의 폐위도 이원익 등이 상소를 올려 반대했지만 인목대비는 결국 폐위되어 서궁에 유폐되게 된다. 정인홍은 인목대비를 옹호하는 척 했지만 실제로는 유폐를 주장했다.

 

 

이처런 정인홍은 광해군때 정치의 실세였고 대북정국의 정신적 지주였다. 하지만 그 역시도 영원하지 못했다. 정인홍의 나이 88세가 되던해 인조반정이 일어났고 정인홍은 참형 되었고 재산도 모두 몰수당하게 된다. 그때 나이 88세면 현재보다 더 늙은 노인인데 사약이 아닌 참형을 행한것은 그만큼 서인들의 복수심을 엿볼수 있다. 그 만큼 대북과 그 반대파들과의 정치적으로 얼마나 강경하게 대립했는지를 알수 있다. 정인홍 본인은 참형을 당했지만 그의 후손들은 연좌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화정에서 정인홍은 한명구님이 연기하게 되는데 한명구란 이름이 생소해서 조사해 보니 연극에서 내공을 쌓고 있는 배우였습니다. 화정에서 정인홍의 비중이 얼마나 클지는 모르겠지만 화정에서의 정인홍이 기대 됩니다. 실제 역사와 동일하게 대북 실세로 거론이 될지 아니면 비중없이 그냥 지나갈지 화정 드라마를 보면 알게 되겠죠 어쨋건 차승원과의 연기호흡이 기대가 됩니다.

 

Posted by 서땡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