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익 그는 누구였나

 

이원익은 조선 중기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 자는 공려 호는 오리다. 태종의 아들 익녕군의 4세손으로 억재의 아들이다. 사람과 번잡하게 어울리지 않고 공적인 일 외 엔 외출도 잘 하지 않는 성품의 소유자였다.

 

 

 

 

 

 

이원익은 조선시대 관료중에서도 손꼽히는 인물중 하나였다. 조선시대 관료중 광해군과 인조 모두 영의정을 지낸 선택된 인물이였다. 선조 광해군 인조대를 살아간 관료이자 학자였다. 평소에도 검소하게 살아 청백리에 오를 정도로 능력과 성품에서 뛰어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이이가 황해 감사로 있을 때 이이의 신임을 얻었으며 이이에게 인정되어 여러차례 중앙관으로 천거되기도 했다. 왕자사부 하낙이 승정원이 왕의 총명을 흐리게 한다고 상소를 했다가 그 책임을 지게 되어 파면되게 된다.

 

 

 

그러나 평안도의 안주에 전염병과 기근이 닥쳐서 폐촌이 되기에 이르자 이조참판 권극례가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안주목사에 기용되게 된다. 이에 이원익은 양곡 1만석을 동원해 기민을 구호하고 백성들에게 누에치는 법등 재활에 힘썻다. 백성들을 좀 더 편히 생활하게 하기 위해 변상병제 교대시간을 줄이는등 백성들을 위해 활동을 많이 했다.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되고 이조판서로 도순찰사를 겸임하고 왕이 피란을 잘 하도록 군사를 모아 적과 싸우는등 군의 기강 학립에도 힘썻다.

 

 

그 후 광해군이 즉위하게 되자 이원익은 영의정이 되었고 대동법을 시행하도록 조언을 하는 등 군사제도 및 세금제도를 개혁했다. 광해군의 대표적인 개혁정책으로 보고 있는 이 대동법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주의 세금부담으로 인해 기득권층의 지주들의 거센 저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목대비 폐모론을 반대하다 유배되었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인조반정 후 다시 영의정직에 올랐다. 인조반정 직후 인조가 "당장 해야 할일이 무엇인가"라고 물었을때 "군사 정비나 인사문제보다 민생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적으로 실행해야 한다."그가 얼마나 민생안정에 힘썻는지 알수 있다.

 

 

 

 

이원익은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오리 이원익은 청렴하고 검소하고 덕이 있는 인물이 었다. 사후 인조의 묘정에 함께 모셨다.

 

 

현재 화정 드라마에 김창완이 이원익을 연기하고 있는데 김창완의 내공이 워낙에 뛰어나 김창완의 이원익이 기대된다. 이제 화정 3회차인데 점점 흥미진진한게 기대된다.

 

Posted by 서땡글
,